백미옥 제 10회 개인전
능혜菱蕙- 생명의 신비를 안고 현재와 맞물려 이어지는 영원의 뿌리
고난과 침묵을 깨고 작가의 혼으로 피어낸 심연의 꽃
그동안 베를린, 뉴욕 개인전 이후 한국에서는 5년 만에 선보이는 백미옥의 제 10회 개인전 ‘능혜菱蕙’는 현재를 지탱시키고 앞으로 이어지게 할 힘의 뿌리에 대해 끊임없이 되묻고 탐구한 ‘바른 흔적’이다. 이번 작품은 영원성을 표현하기 위해 자신 안에 존재하는 심연의 형태를 ‘능혜’라고 명명하고 이것을 다시 과거, 나아가 태초의 시점까지 짚어 나가는 과정의 응집물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미의식에 잠긴 색의 침잠沈潛과 탄생
생명의 뿌리에 대한 작품은 2000년부터 한국의 무속신앙과 동양사상∙철학에 심취하면서 ‘염력念力’, ‘Life Series', 'in 울림’이란 테마로 이어진다. 작품에 바탕이 되는 사상과 정제된 생각을 시각화 하는 작업에 매달리면서 자연적으로 한국의 오방(五方)색을 택하게 되었고 길고 짧은 시간에 시시각각 얻어지는 색의 천착은 백미옥 만의 이야기를 담은 간(間)색으로 생산되었다. 노동집약적 세필드로잉으로 인한 색들은 경계의 해체와 겹침으로 시간의 층위에 침잠되었다가 어느 시점에 커다란 형태의 단면으로 이루어진다.
시공간을 담고 영원으로 이어지는 심연의 형태
백미옥의 작품은 변화의 연결선 상에 있다. 이번 전시 ‘능혜’는 이전과 비교하여 선명한 구상의 형태인 나무, 산, 꽃, 잎 등의 구체적인 자연물로 드러난다. 2000년 대상이 완전히 해체된지 10년 만에 처음 등장하는 ‘능혜’의 형태는 다양한 모습으로 구현된다. 6개의 소품으로 구성되는 나무 시리즈, 100호 변형의 산과 장미, 한 화면에 하나의 줄기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꽃은 그 구성에 따라 색을 입히는 과정과 방법 또한 달라진다.
영원을 반영하는 현실의 표현도구, 회화 그리고 그 특별함.
백미옥의 작업은 마치 석공이 망치와 정을 끊임없이 두드려 돌 안에 내재된 형태를 드러내 듯, 붓과 물감으로 ‘능혜’라는 단어와 연상에 내재된 심연의 형태를 현실로 끌어올린다. 이 결과물은 총 20여점의 평면작품과 설치작업, 작가의 얼굴을 본떠 제작한 마스크 작업으로 구성된다. 사람에게 영원성이란 것은 ‘능혜’같은 구체적이지만 실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대상으로 발현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현실 속 시공간에 존재함을 의미한다.
능혜는 물속에 잠겨 뿌연 진흙더미에 몸을 지탱한 채 물위로 조금씩 꽃줄기를 뻗쳐 마침내 작고 하얀 꽃잎을 피어내는 마름꽃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과 흡사하다. 균질된 화면에서 수없이 겹쳐져 교차하는 색채의 조화, 탄탄히 쌓여진 광폭의 노도같은 붓질의 흔적, 그것에서 느껴지는 아득한 깊이감은 생명의 영원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영원의 끈을 잡기위해 끊임없이 고통 받고 희열하면서 스스로 피운 꽃, ‘능혜’는 앞으로 피고 지면서 그 정신은 생명으로 이어질 것이다.